PART III — SYSTEM
3.2권력 고착 — 룰을 소유하는 자
네트워크로 팽창한 판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. 판 위에서 이기는 경쟁과, 판의 규칙을 정하는 권력은 다른 층위의 게임이고, 후자를 쥔 쪽은 전자를 영구히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.
변수 P(Power Entrenchment, 권력 고착)를 정의한다.
1. 메커니즘 — 착취적 제도의 중력
아세모글루와 로빈슨의 제도 연구(『국가는 왜 실패하는가』, 2012)가 골격을 준다. 제도는 두 방향으로 기운다 — 참여를 넓혀 파이를 키우는 포용적 제도와, 소수가 규칙을 장악해 파이를 빨아들이는 착취적 제도. 그리고 규칙을 정하는 자리에 앉은 쪽은, 그 자리를 지키는 방향으로 규칙을 다시 쓰려는 유인을 늘 갖는다.
고착의 완성은 세습이다. 자본만이 아니라 자격·연줄·취향 같은 문화 자본까지 대물림되면(부르디외의 용어를 빌리면), 다음 세대의 출발선이 이미 규칙 안에 새겨진다.
2. 관계식
Privilege ∝ 1 / Distance_중심. 중심(룰을 정하는 자리)에 가까울수록 정보와 기회를 먼저 쥐고, 변방일수록 비용을 먼저 진다.
그리고 고착의 재귀식: 오늘의 우위 → 규칙 수정권 → 내일의 더 큰 우위. 이 되먹임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사다리는 한 칸씩 사라진다.
3. 동형성 — 같은 변수, 네 개의 무대
토지와 신분 — 땅을 가진 자가 땅의 법도 정하던 봉건 질서. 경작자는 대를 이어 경작자였고,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규칙의 산물이었다.
시험과 문화 자본 — 형식상 누구에게나 열린 선발 제도가, 준비 비용과 물려받은 소양의 격차로 사실상의 세습 통로가 되는 구조. 여러 시대의 등용문이 같은 궤적을 그렸다.
면허와 길드 — 진입 자격을 기존 사업자들이 심사하는 제도. 품질 보증의 얼굴을 하고 경쟁 차단의 몸을 갖기 쉽다.
판 위의 수수료 — 다수가 모인 판의 소유자가 통행료와 노출 규칙을 정하는 동시대의 구조. 참여자들의 노력이 판의 해자를 쌓고, 판은 그 해자에 값을 매긴다.
4. 설계에 적용하기
이 변수는 설계자에게 두 개의 거울을 준다. 판을 만드는 쪽이라면 — 룰 수정권이 한 곳에 고이는 구조는 단기 효율과 장기 부패를 맞바꾼다. 이의 제기의 통로, 규칙 변경의 절차, 중심 교체의 가능성을 판에 심어 두는 것이 판 자체의 수명을 늘린다.
판 위에서 뛰는 쪽이라면 — 노력의 방향을 물어야 한다. 지금 나의 성취는 내 자산으로 쌓이는가, 남의 해자로 쌓이는가. 규칙을 못 정하는 판에서의 승리는 언제든 규칙 개정 한 번으로 회수될 수 있다.